지구별 여행자 녹홍/남기고 싶은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채식가로 산다는 것은

청록버들 2023. 5. 12. 22:31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내가 살던 시골집 뒷집에는 사나운 검은 개가 있었다. 외부인들을 보면 으르렁거렸기 때문에 늘 끈에 묶여 있었다. 
 
어느 여름 날 나는 무슨 일로 뒷집에 갔다. 그날은 어쩐 일로 그 검둥개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기에 그 냄새를 따라 집 뒷쪽으로 갔다. 거기에서는 뒷집 아저씨가 어떤 네 발 달린 짐승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털을 태우고 있었다. 순간적이었지만 아누비스 같은 그 모습과 코를 찌르는 털타는 역한 냄새에 얼른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뒷집은 그전날 잡은 개고기라며  납작하게 썬 삶은 고기 한 접시를 우리집에 보내왔다. 옅은 회색과 갈색이 섞인 고기조각들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후 며칠간은 음식을 먹지 못했고 나는 채식가가 되었다.

2023년 5월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끼니를 채우기 위해 채식이 제공되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식당가 ㅡ 국수집에 가니 비빔국수 등 여러 메뉴가 있었다. 사장은 모든 메뉴가 소고기, 닭, 멸치 육수로 되어있다고 했다. 비빔국수에도 멸치 육수를 쓴다고 했다. 기본국수를 맹물로 끓여줄 수 없느냐고 했다니 그럼 맛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식당주인은 채식국수를 만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다음으로 일반 한국 음식점에 가니 메뉴중 비빔밥이 있었다. 소고기를 빼고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은 주방에 물어봐야한다고 했다. 주방에서는 소고기를 뺄 수 없다는 답을 주었다.

결국 그 많은 음식점 중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 뿐이었다. 야채샐러드가 있는 이태리 음식점과 채식메뉴를 제공하는  태국음식점. 함께 간 미국인 일행은 1970년대 한국은 고기음식이 드문 곳이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부산역 ㅡ 역시나 식당 중 단 한 곳도 채식메뉴가 있는 곳이 없었다. 결국 한식당에 가서 다른 분들은 국밥 등을 시켜드시고 나는 밥 한 공기 시켜서 밥알을 세며 밥만 먹었다. 김치나 깍두기에도 젓갈이 들어가기에 먹을 수 없었다.

춘천 고급 레스토랑 ㅡ 주방에서는 나를 위한 샐러드, 우유로 만든 수프를 만들어 주셨다. 그것 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일이었는데, 우리를 초대한 분들은 미안하셨나보다. 나한테 뭐라도 해주신다고 김밥집과 순두부집에 가서 채식음식을 사오시려 하신듯하다. 그런데 떡만 사오셨다. 순두부집에도 채식메뉴가 없었고, 김밥집에서도 야채재료로만 김밥을 말아주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생전 처음 채식가를 봤다는 두 분은 채식 음식 구하기가 그리 어렵단 것에 놀라워하셨다.

대한민국은 고기음식점들이 가득하지만, 채식전문식당을 제외하고 채식 메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일반 식당들은 채식가들을 귀찮아 하는 느낌이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쪽으로 좀 바뀌면 좋겠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화 하려면 다른 문화와 다른 식습관 등 다름에 좀더 관대하고 다른 이들을 좀더 포용해야할 것이다.

채식인의 식단